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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기부 모금함 상세

슬픔의 꽃을 희망의 꽃으로 피우렵니다

광주광역시 장애인종합복지관
목표 금액3,000,000원 목표
모금함 상태모금종료
5,079명이 참여했습니다
  • 직접기부 (179명)2,498,400
  • 참여기부 (4,900명)501,700
  • 공유, 응원, 댓글로 참여하면 카카오가 기부합니다.
  • 기부금은 100% 단체에 전달됩니다.
광주광역시 장애인종합복지관

프로젝트팀

'사람을 이어주는 든든한 파트너' 광주광역시장애인종합복지관입니다. 우리 복지관은 1988년 설립 이래 30년 동안 지역사회 재활시설로써 지역의 장애인과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항상 지역 장애인의 권익을 위하여 앞장서 왔습니다. 앞으로도 장애친화 마을, 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소통하는 복지 서비스로 우리 이웃의 활기찬 삶, 건강한 행복을 만들어가겠습니다.

같이 기부해요

모금함 스토리 본문

소중한 만남이 슬픔으로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여자의 행복은 무엇일까요?” 미영씨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평범하게 성장했고 전문대를 졸업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웠던 피아노가 학원 선생님이라는 사회생활의 첫걸음이 되었고 미영씨의 인생도 그렇게 평범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미영씨 나이 28살 무렵 지인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만남은 계속되었고 미영씨는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소망한다.” 결혼이 미영씨에게 악몽으로 변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연애 기간에 보여주었던 남편의 자상한 모습들은 모든 것이 거짓이었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는 날에는 항상 폭언과 폭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술이 깬 다음 날 남편은 상처로 얼룩진 미영씨의 모습을 보며 반성과 후회로 용서를 빌었지만, 남편은 늘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면 같은 행동이 반복되었습니다. 미영씨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의 삶에 변화가 있으면 달라질 거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아이가 생기면 뭔가가 달라질 거라 생각을 하고 임신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의 모습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10달의 시간이 흘러 이쁜 공주를 출산하였고 산후조리를 하면서 미영씨는 몸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습니다. 아이가 생기면 남편이 달라지기를 내심은 기대했었지만, 남편에게서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산후조리가 끝나고 미영씨는 건강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 결과는 우려했던 결과가 나왔습니다. 병명은 희귀난치성 질환인 근육병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미영씨의 슬픈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늘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늘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우린 그렇게 홀로서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미영씨의 결혼생활은 덧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모습은 모든 것이 똑같았습니다. 미영씨의 몸은 서서히 굳어져 가고 있었지만, 술로 인한 남편의 폭력은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가정은 없었고 항상 술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삶을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포악함은 날이 갈수록 계속되어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미영씨는 아이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9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영씨는 딸과 함께 남편의 폭력이 없는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회생활은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근육병으로 인하여 신체가 굳어져 가고 있는 장애인을 채용하겠다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장애인을 구직하겠다는 업체가 있어서 직장을 구할 수는 있었지만,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직장의 급여가 너무 적어 가정생활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미영씨는 근육병으로 인하여 힘들었지만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근육병의 진행속도가 조금은 더디게 진행되어 빈곤한 삶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도 그런 엄마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었고 아무런 말썽 없이 무럭무럭 성장하였습니다. 그런 딸이 항상 고맙고 소중하고 감사했습니다. 저희 모녀의 생활은 버거우리만치 힘들었지만 서로를 위안 삼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갔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딸과의 행복함이 있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딸과의 행복함이 있었습니다.

딸의 행복을 기도합니다.

딸과 함께 15여 년을 둘이서만 걸어왔습니다. 언제부턴가 미영씨의 근육병 증세가 심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딸은 늘 엄마의 그림자가 되어 혼자서 어렵고 힘든 엄마와의 동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딸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졸업 이후 직장을 다니면서도 엄마의 손발이 되어 늘 엄마의 뒷바라지를 하는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함께 걸어온 가시밭길의 어둠 속에서도 묵묵히 엄마를 보살피며 살아왔던 딸이 이제 자신의 가정을 만들어서 자신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딸이 가정을 꾸려 엄마의 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엄마와의 불편한 동행을 하면서도 꿋꿋이 잘 성장해준 딸이 이제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떠납니다. 고맙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딸은 저에게 “이제 엄마를 곁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고 말하는 딸을 보며 미영씨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인생의 2막을 열어갑니다.

“오늘도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저에게 이겨낼 수 있는 시련만 주시기를......” 미영씨의 하루는 활동지원인의 도움으로 시작합니다. 아침 일찍 눈을 뜨지만 활동지원인이 오기 전까지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9시쯤 도착한 활동지원인이 먼저 미영씨를 일으켜 세워 미영씨를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늦은 아침식사를 챙겨주며 하루를 열어줍니다. 현재 미영씨의 수입은 정부보조금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매달 정기적으로 지출되는 금액(관리비, 공과금, 식비 등)은 항상 미영씨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근육병의 진행상태는 미영씨를 휠체어에 의지하게 만들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정기적으로 복지관에서 재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굳어지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영씨는 혼자서 살아가야 합니다. 미영씨는 오늘도 통장의 잔고를 보며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미영씨의 평범한 일상과 편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실어 응원해주세요.” 소중히 모금된 금액은 혼자서 살아가는 미영씨의 경제적 지원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 개인 신상의 보호를 위하여 가명을 사용하였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또다른  2막의 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또다른 2막의 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모금함 상세정보

본 모금은 한국사회복지관협회에서 사업 검토 및 기부금 집행, 사후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경제적지원 300000*9개월2,700,000
  • 경제적지원 300100*1개월300,100
목표 금액3,0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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