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같이가치

나의 할머니

봉숭아 물들여준다고 나와 여동생을 불러 세운 할머니. 으깬 봉숭아를 풀잎으로 하나하나 감싸주셨다. 코 자고나니 손톱이 온통 다홍빛으로 물들었다. 어느 날은 마당에 잔뜩 떨어진 앵두를 줍고 놀았다. 신나게 주워 왔더니 간식으로 앵두잼을 만들어주셨다. 딸기잼도 아닌 것이 참 맛있게 달았다. 여름엔 버리지 않고 모아둔 페트병에 식혜를 담으셨다. 날 더우니 쭉 마시라며 끼니마다 한 그릇씩 주셨다. 나의 할머니는 솜씨가 좋으셨나보다. 뭐든 잘하셨을 나의 할머니, 살림만 하셨다니 참 아깝다. 얼마 전, 어르신 집에 생필품을 지원하러 찾아간 길에 마신 식혜 한잔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어르신이 ‘내가 담근 거야, 마셔봐~’ 하시며 식혜 한잔을 대접해주셨는데, 문득 할머니가 그리워지는 그런 정겨운 맛이었습니다. 무성한 백발에다가 허리는 굽고 손은 떨리지만, 할머니의 식혜의 맛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르신이 잘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어르신들과 함께 더 의미 있고 보람차게 만들어보려 합니다.

동서학동 남고산길 전경

독거 여성어르신들의 마을 ‘동서학동 남고산길’

지리적으로 동서학동은, 60세 이상 노인인구가 동 전체인구의 37%를 차지하고 있어 이미 초고령 사회의 모습을 갖춘 곳입니다. 대부분 일찍이 사별이나, 가족해체로 홀로 거주하시는 독거 여성어르신들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개발이 더디기 때문에 낡은 가옥과 쪽방이 밀집되어 있어 삶의 질도 낮을 수밖에 없는데요. 특히 여성 독거 어르신은 대부분 전업주부로 살아왔기 때문에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해온 남성 어르신에 비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심리적 결핍과 위축, 상실감을 쉽게 느낄 수 있어 고독감, 우울감이 심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요. 그렇기에 더욱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는 활동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콘텐츠 이미지 모음

Slide 1 of 3

이전 슬라이드

다음 슬라이드

슬라이드1 / 3

직접 배냇저고리를 만들어 나눈 "할머니의 배냇저고리"

명절음식을 함께 만들어 나눈 "더불어 한끼"

어르신이 잘 할 수 있는 일

작년, 서학동 여성 어르신들의 내공이 느껴지는 요리솜씨와 바느질솜씨를 한껏 발휘했습니다. ‘할머니의 배냇저고리’란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어르신 15명이 직접 한 땀, 한 땀 손바느질 한 애착인형, 배냇저고리, 속싸개를 크리스마스를 맞아 지역 영아 위탁시설에 기증한 것입니다. 또 ‘더불어 한 끼’ 프로그램으로 추석명절을 맞아 독거 어르신 총 30명에게 직접 만든 따뜻한 명절음식을 배달까지 해드렸는데요, 늘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어르신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지역사회 이웃들을 위해 나누고 봉사했던 이 두 번의 경험은, 어르신들에게 큰 보람과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여전히 ‘잘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나눔 보따리’가 가져올 가치

흩어진 가족들이 모이는 추석, 그러나 명절이면 평소보다 더욱 외로움이 짙어지던 독거어르신들, 올해는 코로나19가 그 깊이를 더 해갑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함께 식혜와 생강청을 만들어 예쁜 유리병에 담아 홀로 지내는 독거 이웃들과 나누고 취약 아동시설과 몸이 불편해서, 마음이 아파서 함께 하지 못한 외로운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송편과 함께 나눔 보따리를 선물하려고 합니다. 어르신들의 외로움이 시원한 식혜처럼 식혀지도록, 이번 추석만큼은 따뜻한 마음을 담은 선물들을 통해 과일청으로 건강해져 활기차게 보내실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