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메뉴 바로가기

같이기부 모금함 상세

사는게 힘들어도 우리 두 딸 다시 보는 날까지 버틸게

사단법인 하나사랑협회
목표 금액4,740,000원 목표
모금함 상태모금종료
5,786명이 참여했습니다
  • 직접기부 (455명)4,207,500
  • 참여기부 (5,331명)532,500
  • 공유, 응원, 댓글로 참여하면 카카오가 기부합니다.
  • 기부금은 100% 단체에 전달됩니다.
사단법인 하나사랑협회

프로젝트팀

사단법인 하나사랑협회는 남북민의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평화 통일을 염원한남북의 국민들과 해외동포들이 손을 잡고 정견과 신앙을 초월하여 화합 공존 미래의 가치아래 문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통일한국의 선봉자가 되는 것을 사명으로 합니다. 주 활동 사업은 남북 국민의 문화적 교류사업, 정착하는 새터민들의 지원사업, 북학의 취약한 여성 및 어린이 지원 사업, 북한의 보건의료교류 및 지원 사업 등이 있습니다.

같이 기부해요

모금함 스토리 본문

‘엄마’라는 이름으로 버텨왔던 새터민의 삶

부산에 사는 미영씨(가명, 51)는 2005년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북한에서의 형편으론 도저히 어린 딸들을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한 미영씨는 7년간 홀로 중국 공안과 몽골 군인들을 피해 다녔습니다. 간신히 도착한 남한 땅에서 이북 말을 쓰는 미영씨를 향한 멸시는 어딜 가나 그녀를 따라다녔지만, 죽을 고비도 수십 번 넘겼으니 이 정도는 별 거 아니라며 씩씩하게 견뎠습니다. 조선소도 다니고 식당 일도 하며 밤낮없이 열심히 일해도 북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남들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았던 그녀. 그래도 이 돈이면 언젠간 북에서 딸들을 데려올 수 있을 거란 희망에 연신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딸들과 함께 살기 위해 안정된 직장이 필요했던 미영씨는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공부해 보험사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의 고생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뻤지만, 그런 미영씨를 기다리는 건 갑상선암 진단과 수술조차 쉽지 않은 난치성 허리 디스크였습니다.

콘텐츠 이미지 모음
Slide 1 of 5
슬라이드1 / 5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뼈와 살가죽만 남은 딸아이를 등에 업고……

하루가 다르게 건강은 악화되지만, 미영씨는 타지에 두고 온 딸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에 잠들 수도 없습니다. 북한에서 심한 가정불화를 겪었던 그녀는 당시 법으론 이혼할 수도 아이를 데려올 수도 없었습니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타지에서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그 사이 남편은 친딸을 고아원에 버린 채 다른 여자와 외도를 저질렀습니다. 아이가 고아원에 버려졌다는 사실도 모르고 일만 하기를 수개월, 미영씨는 친구로부터 자신의 딸과 닮은 아이가 고아원에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랴부랴 달려간 곳엔 몇 달째 아무것도 먹지 못해 뼈와 살가죽만 남은 딸이 쓰러져있었습니다. 죽기 직전의 아이를 들춰 업고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마음뿐 이었던 미영씨는 결국 딸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회사 돈 50만원에 손을 댔습니다. 딸을 극적으로 살리긴 했지만 곧바로 정부 감사에 끌려가게 된 미영씨는 다시는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못난 아빠에게 딸을 보내야 했습니다.

콘텐츠 이미지 모음
Slide 1 of 2
슬라이드1 / 2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만삭이 된 배를 부둥켜 안고 산과 들로 도망 다녀야 했던 중국 생활

북한 감사에 끌려가면 모든 게 끝이란 걸 알았던 미영씨는 죽을 힘을 다해 중국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가까스로 중국 땅을 밟았을 때 미영씨는 뱃속에 둘째가 들어섰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영양실조로 몇 달씩 생리를 하지 않았던 적이 많아 임신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던 그녀는 점점 불러오는 배를 움켜쥐고 중국 공안을 피해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는 남의 집 헛간에 숨어서, 하루는 남의 집 밭에서, 추운 겨울에 비닐 한 장을 덮고 숨어 쪽잠을 청하며 살아남았습니다. 그런 그녀를 며칠 재워주던 중국인 부부는 그녀를 소 한 마리 값에 몰래 팔아넘겼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중국에 가면 가축처럼 팔려간다’는 말을 그제서야 이해하게 된 그녀는 며칠이 걸려 도착한, 말조차 통하지 않는 중국 오지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했습니다. 만삭이 된 그녀는 성인 남성 키만한 커다란 농기구를 이고 새벽녘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 종일 밭을 메야 했습니다.

콘텐츠 이미지 모음
Slide 1 of 4
슬라이드1 / 4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우리 딸, 엄마처럼 살면 안돼. 엄마가 꼭 데리러 올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잔인한 수준의 노동 때문이었는지, 둘째 아이는 12달이 지나도록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도 극심한 복통을 견디며 밭일을 했던 미영씨는 결국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둘째 딸을 출산했습니다. 산후조리도 할 새 없이 곧바로 갓 태어난 둘째 딸을 들춰 업고 밭에 나가야 했던 그녀. 성치 않은 몸으로 아이를 업고 무려 7년을 매일 같이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일해야 했습니다. 몸이 너무 아파서 매번 울며 밭일을 하던 그녀는 이렇게 살다간 딸도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시골에 사는 할머니께 어린 딸을 맡기고 한국으로 도주를 시도한 그녀. “내가 널 돈 주고 사 왔는데 어디 가느냐!”는 말을 들으며 붙잡혀 오기를 여러 번, 중국 공안과 몽골 군대에 끌려가기를 계속 반복한 끝에 드디어 미영씨는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 들어간 이미지입니다.
“사랑하는 딸들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조금만 꿈 꿀 수 있게 해주세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미영씨는 딸들을 데려오기 위해 유전자 검사와 각종 서류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미영씨의 노력에 협조적이지 않았고, 브로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하던 그녀는 이제 갑상선 암과 허리디스크뿐 아니라 고혈압과 협심증, 당뇨와 심장병을 견디기 위해 매일 같이 23가지의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해야 합니다. 약을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져 일은커녕 걷는 것조차 힘든 미영씨이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큰 수술을 여러 번 받느라 진 빚뿐 입니다. 조금이라도 빚을 갚으려 매번 없는 살림을 쪼개니 이제는 부엌에 계란 한판과 생수 몇 통을 사다 두고 하루에 한 알씩 아껴 먹는 것이 전부입니다. 약 때문에 온몸이 퉁퉁 붓고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지만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면 타지에 두고 온 딸들인가 싶어 밖을 내다본다는 미영씨.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녀가 이제는 조금만 덜 아프도록,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세요.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이 그녀의 삶에 큰 희망이 됩니다.

모금함 상세정보

  • 프로젝트팀
    사단법인 하나사랑협회
  • 모금기간2020. 04. 30 ~ 2020. 06. 09
  • 사업기간2020. 07. 01 ~ 2021. 06. 30
  • 영수증 발급기관사회복지공동모금회

본 모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사업 검토 및 기부금 집행, 사후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외래진료비 지원 7만5천원*12개월900,000
  • 약값 지원 7만원*12개월 840,000
  • 생활비 지원 25만원*12달3,000,000
목표 금액4,74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