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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IMF, '헬조선'의 근원을 찾아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목표 금액4,500,000원 목표
모금함 상태모금종료
4,043명이 참여했습니다
  • 직접기부 (84명)3,423,600
  • 참여기부 (3,959명)406,200
  • 공유, 응원, 댓글로 참여하면 카카오가 기부합니다.
  • 기부금은 100% 단체에 전달됩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프로젝트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정보공개를 통해 모든 시민이 알 권리를 누리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사회를 만듭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가가 생산한 정보에서 배제되어 있습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정보독점과 은폐로 인한 불평등한 관계를 해소하고, 정보의 대중화를 통해 시민의 알 권리 실현과 사회 전반의 투명성 및 책임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우리는 2008년에 창립했으며 자유롭고 독립적인 활동을 위해 정부 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한다는 재정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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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함 스토리 본문

97년 IMF, '헬조선'의 근원을 찾아서

97년 가을,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외환위기의 광풍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이른바 30대 대기업 중 17개가 연달아 무너지고, 은행과 금융사들 역시 퇴출되었습니다. 정리해고로 인해 10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 역시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2001년 8월, IMF 관리 체제가 끝나면서 "이례적으로 빠르게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외환위기의 후폭풍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 취업대란, 소득 양극화 등 오늘날 심각한 사회 문제들의 뿌리가 97년 외환위기라 할 수 있으니, 이 시기야 말로 가히 '헬조선의 기원'이라 부를 만 합니다. 이처럼 외환위기가 한국 사회에 남긴 커다란 상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환위기의 원인과 발생, 경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금 모으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위기 극복 서사는 있지만, 정작 위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인식이 없는 셈입니다.‘제 2의 외환위기’를 이야기하는 언론들 역시, 외환위기를 수사로 활용할 뿐 외환위기 당시의 문제들을 짚어내고 복기하려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는 외환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이 무엇이었는지, 그 모든 과정이 우리의 삶과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좀 더 깊이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는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정보공개를 통해 모든 시민이 알 권리를 누리는 투명하고 책임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외환위기 20년을 맞은 2017년부터 20년 주기로 비밀이 해제되는 국제기구 IMF의 기록을 청구하는 한편, 국내의 공공기관과 민간단체들이 보유한 관련 기록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를 통해 외환위기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넓히고, 많은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우리사회 ‘공론장’의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콘텐츠 이미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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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 (97imf.kr)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 (97imf.kr)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주요기록(97imf.kr)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주요기록(97imf.kr)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 모양'이 되었나

97년 외환위기에 대한 기록을 모으는 작업은 이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양극화, 불안정한 노동, 노인빈곤과 청년세대의 전반적인 불안.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의 근원이 무엇일까. 1997년부터 2001년까지의 IMF관리체제는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기점이었지만, 우리는 이 ‘흑역사’를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습니다.

역대급 협상의 기록, 다 어디에 있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2017년부터 IMF에 20년이 지난 기록들에 대한 비밀해제를 요청하고, 국가기록원에 찾아가 당시 관료들이 남겨놓은 기록을 수집해 디지털화 했습니다. 기업, 노동계, 연구기관, 언론보도 등 웹 상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모았습니다. 외환위기의 기록을 먼저 살펴보았던 연구자를 찾아가 기초자료들을 기증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총 5300여건의 자료가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에 1차로 등록되었습니다. 하지만 IMF측의 기록을 비롯해 한국정부가 처음 구제금융을 논의한 한국은행의 보고서, 협상 당시 재정경제원에서 생산한 60철 분량의 공문 등. 많은 주요한 기록들이 보존되지 않거나 비공개되어 일반에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를 통해 더 많은 기록들이 공유될 수 있도록 비밀해제 요청과 수집 작업은 주기적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IMF위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외환위기는 찰나의 시기로 남아있습니다. 한국이 큰 불황을 겪었다가 빠르게 극복한 사건, 국민들이 마음을 합쳐 금모으기 운동을 펼쳤던 순간으로 기억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외환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은 무엇이었는지, 그 모든 과정이 우리의 삶과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좀 더 깊이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 내의 다양한 콘텐츠들은 이러한 고민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재벌, 금융, 실업, 문화현상 등 외환위기와 관련한 다방면의 논의를 계속해서 소개할 예정입니다. IMF를 직접적으로 겪지 않은 사람들도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와 시각들을 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후원으로 함께하기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는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 비영리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opengirok.or.kr)에서 운영합니다. 지속적으로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사이트를 유지/보수하고, 컨텐츠를 보강하고,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원고료, 운송료, 스캔비용, 프로그램 사용료 등의 비용이 필요합니다.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여러분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모금함 상세정보

본 모금은 아름다운재단에서 사업 검토 및 기부금 집행, 사후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DB입력 인건비 52시간*1만원*1인520,000
  • 구술채록 녹취정리 8만원*3건240,000
  • 구술인터뷰비용 15만원 * 3건 450,000
  • 컨텐츠제작 원고비 30만원 * 4건1,200,000
  • 수집자료 전자화(스캔 및 ocr 작업 비용)609건1,100,000
  • 서버유지비(2020.12-2021.12)298,811
  • 수용비20,989
목표 금액3,829,800

외환위기 아카이브 같이가치 펀딩 계획에서는 당시의 다양한 기억을 구술채록으로 남기기 위해 총 6건의 구술 인터뷰를 포함하였습니다. 외환위기가 모든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사건이긴 하지만 아카이브에서 기록으로 공유할 수 있는 사례를 분류하여 그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실 분들을 구해야 하는데, 2019년 12월 3건의 인터뷰를 진행한 이후 올 하반기에 계획했던 구술 인터뷰는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인터뷰이를 찾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에 구술 인터뷰 3건에 대한 사례비와 녹취록 비용을 컨텐츠1건과 향후 1년간의 서비유지비용 으로 조정하였고, 또한 기존 항목 중 <수집기록 전자화 및 웹페이지 등록비>에서 부가가치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항목이 있어 부가가치세를 포함하여 8만원 가량의 비용을 조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