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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기부 모금함 상세

소외의 또 다른 동네, 봉천동

공공예술협동체(PACO)
목표 금액300,000원 목표
모금함 상태모금종료
1,291명이 참여했습니다
  • 직접기부 (13명)172,600
  • 참여기부 (1,278명)127,400
  • 공유, 응원, 댓글로 참여하면 카카오가 기부합니다.
  • 기부금은 100% 단체에 전달됩니다.
공공예술협동체(PACO)

프로젝트팀

공공예술협동체(PACO)는 예술대학 학생들이 모여 공공 예술과 사회참여적 예술 봉사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저희는 미술 전시, 공연, 연주 등 재능 기부를 통해 예술로 사회를 이롭게 만들고 예술이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더불어 많은 예술인들이 예술 공익 활동을 유용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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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명이

300,000원을 모았어요.

프로젝트팀 공공예술협동체(PACO)2019. 11. 06
우리가 발견한 봉천동의 빛을 모아, <소외의 탄생>

<소외의 또 다른 동네, 봉천동> 모금함을 기억하시나요? 7월 3일부터 7월 8일까지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성원으로 총 300,000원이 모였으며, 그 결과 봉천동의 옆 동네인 신림동에서 무사히 전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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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의 탄생>展은..

전시는 8월 8일부터 8월 11일까지 총 4일간 신림동에 있는 <실험실>(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로70길 27)이라는 공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기획팀, 디자인홍보미디어팀, 작가팀 총 3팀의 팀원들은 봉천동을 빛내는 불빛에 주목하여 해당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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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의 탄생> 展은 도시 속 크고 작은 소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였습니다. 원경에서 비춘 봉천동은 크게 주황색과 백색으로 나뉘지만, 가까이에서 창을 하나하나 비춘다면 여러 빛깔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주황색 빛 아래에 사람이 사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저희는 주황색 빛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해당 전시에서 그리는 봉천동을 통하여, 우리 사회 속 보여지는 것만이 정말 진실인지, 그 너머를 현대인으로서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하였습니다.

작품 소개

윤도현 작가 소개: 말이나 글보다 그림이 주는 힘을 믿었고, 그래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미술사학을 공부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 그림을 매개로 한 소통을 시도해보고자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제목: 봉천동 사람들은 도시인이다 재료: 아크릴판에 프린트, 붓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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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의 판자촌과 높은 아파트가 공존하는 모습은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작가는 그 둘의 구분되는 성질이 필연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에서 작품을 시작한다. 도시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판자촌과 아파트는 각각 '비효율'과 '효율'이라고 정의된다. 작가는 '비효율'과 '효율'이 혼잡하게 공존하는 곳이 봉천동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비효율'은 값이 싸고, '효율'은 값이 비싼 것을 의미한다. ‘효율’은 '비효율'을 필요로 하지만, ‘비효율’에 사는 사람은 그 '효율'에 밀려나는 '비효율'을 따라서 도시의 다른 곳으로 이사 간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비효율'은 '효율'과 함께 존재한다. '효율'은 '비효율' 속에 사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봉천동의 작은 종교 단체들과 사무실의 직원들이 공존하는 모습은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그 둘은 다른 성질의 무엇이며, 작가는 이 역시 필연적으로 공존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도시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종교와 빌딩은 '비이성'과 '이성'이라고 정의된다. '비이성'은 '이성'에 의존하고, '이성'은 '비이성'의 도움을 받는다. 도시에선 그런 아이러니함이 만들어내는 재미난 광경들이 보인다. 그들은 서로에게 '물든다'. 작가는 언덕 아래 연결된 핏줄과 심장을 위의 내용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나타낸다. 정맥과 동맥에 흐르는 피는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함께 존재해야만 하고, 심지어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 그들은 끊임없이 순환하고, 겹친다. 둘은 필연적으로 공존한다.

실은 이들 모두가 '섞이고', '물든' 모습이 도시 그 자체이며, 누군가는 깔끔하게 구별된다고 생각했던 그 모습은 색안경을 쓰고 본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작품 앞에 놓인 빨간색, 파란색 판을 통해 본 것처럼 말이다. 작품은 '한 장면에서 겹쳐지는 빨강과 파랑', '언덕 능선을 따라 번갈아 가며 이어지는 빨강과 파랑'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들 중 어느 하나를 빼면 작품은 그 즉시 끊어진다. 작가는 그 혼잡함이 봉천동 그 자체임을 인정한 후에, 각각의 언덕, 그 위에 사는 사람을 다시 바라보자고 요구한다. 그리고 '항상 도시에 존재할' 이 사람들 간의 숱한 갈등의 해결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시한다.

여채원 작가 소개: 프로그래밍, 디자인, 현대미술을 전공하여 앱 제작과 사람들과 소통 가능한 작품에 관심 있습니다. 제목: 찢겨진 편견 재료: 거울과 아크릴, 목재 그리고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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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이야기나 뉴스의 기사를 통해 살펴본 봉천동은 ‘달동네’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도시재생이 진행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새 건물을 세운다.'라는 의미로, 현재 있는 건물이 낙후된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재개발 이후에 그 동네에 관한 확인할 수 없는 부분까지 판단하면서, 왜곡과 편견까지 생겨나는 모습을 우리는 마주한다. 하지만 애초에 봉천동은 판단을 요구한 적이 없다. 판단을 당하는 것들은 모두 프레임이 씌워지게 된다. 하지만 판단이 편견이 된다면 이들은 불필요하게 매개체가 되어 우위에 선 것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밖에 되지 않는다. 도시 속 봉천동은 도시 사람에게 우월감을 위한 수단이 된 것이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거울은 ‘나’를 보여주는 물체로 나의 상태를 온전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원하는 것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무시하기 쉬운 매체이기도 하다. 처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바라봤는지, 주변에서 무슨 얘기를 듣고 영향받아 각색해 생각했는지 등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이상 무엇이든 진실하게 다가갈 수 없다. 작가에게 봉천동은 처음에는 작업을 위한 수단으로 먼저 다가왔지만,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공감하며 편견은 깨지게 된다. 거울의 깨짐은 과거와 지금의 생각들이 부딪히며 생긴 균열이며 외면한 나를 마주하게끔 만드는 장치이다. 하지만 주민이 아니기에, 아직 존재하는 몇몇 변하지 않는 작가의 생각들은 천을 통해 보여진다. 아직 마주하지 못해봤고 언젠가 그 생각도 벗겨질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최한솔 작가 소개: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 기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다큐멘터리와 영상을 공부 중입니다. 제목: 물은 흐를 때 탁해지지 않으며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다 재료: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7분 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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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이데올로기 속에서의 폭력은 폭력을 정당화시킨다. ‘그만큼의 지불을 하지 못했으니 넌 자격이 없어’ 라는 폭력의 내재화. 그것은 아주 은밀하게 우리 뇌 속으로 들어와 조종한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가치관들은 과연 진정으로 자신이 선택했던 것들일까. 화자는 이러한 지점들을 다시금 상기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가난은 절대적인 악과 죄가 되었다.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것들과 선택할 수 없었던 선택들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되어버렸다. 가난은 더는 구조화의 문제가 아니다. 가난은 성실함의 부재, 끈기와 노력의 결핍이라는 징표가 됐다. 돈은 나 자신을 표현하는 얼굴이 됐으며 그것은 곧장 인성의 평가로 이어진다. 자, 이제 다시금 생각해보자. 우리의 욕망, 행복의 필수조건, 잘살고 있다고 회자하는 요소들 등 이 모든 것들은 어디서부터 발현이 되었는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진 폭력의 시선은 언제부터 당연한 것들이 되었는가?

‘자연에 대한 폭력적인 행위나 혹은 문화나 문명에 대한 폭력적인 행위를 보더라도 그 폭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전해져온 한 문화가 눈앞에서 파괴되고, 조상으로부터 전해져온 기술이 없어지고, 음악이 없어지고, 말이 없어집니다. 그것을 보고 ‘발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그런가? 이게 발전인가 하고 체념을 하거나 서글픈 일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필연적이라는 식으로 생각을 바꿉니다.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에는 이런 힘이 있습니다. -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책 차용.’

개발이라는 것은 자동사이지만 지금의 도시 개발은 타의 적으로 이뤄진다. 더군다나 미개발의 지역 또는 나라들은 다른 이(선진국, 또는 정부) 에 의해 정의된다. 개발지역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초점을 두고 미개발 지역을 보며 결핍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만 보고 개발을 하는 것은 과연 진정한 개발을 하는 것일까? 개발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우리에게 이미 내재화되어있다. 이제 개발이라는 것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의미로 해석되어가고 있다. 개발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경주마이다. 현존하는 개발의 시선은 세상이 발전해 감에 따라 인간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다른 이(선진국 또는 정부) 들의 초점을 중시하고 개발을 해나간다는 것이다. 그 안에 사는 생명과 삶의 방식을 바라보지 않는 채 말이다. 화자는 개발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현존하고 있는 개발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 에 대한 지점을 마주해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이 이데올로기 앞에 체념한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근대화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치관 등에 이런 면에서 전반적으로 구조적 변화가 진행되어 전보다 ‘나은’ 생활조건을 조성해 가는 과정에서 부합되지 않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 그들이 과연 ‘미개발’ 이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할까?

이초인 작가 소개: 영상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 실험들을 하며 스스로의 폭을 더 넓혀가고 싶습니다. 제목: 흡입 재료: 다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약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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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 재개발지역 내 폐가에 모기향이 피어 있다. 모기향에는 ‘도시 및 주거 환경 정비법’의 ‘제1조(목적)’가 반복적으로 적혀있다. 정비구역 내 지배적인 담론 중 하나는 재개발 진행 과정에서 공간이 주거로의 기능에서 자산 축적의 수단으로 의미가 변형된다는 점이다. 모기향이 피어 있는 폐가의 공간 역시 주거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더 높은 감정평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중간중간 삽입된 모깃소리와 봉천동의 목소리는 묘하게 어울리며 사운드를 채워나간다. 재개발 내에 이해관계의 복잡성은 "모기향을 지피는 것도 모기향에 죽는 것도 다름 아닌 ‘나’이다."라는 작가의 고백에서 보이듯, 쉽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상정하기 어렵다. 모기를 숨 막히게 하는 연기가 피어오르다 보면 어느새 재개발의 목적이 적힌 모기향은 조금씩 타 재가 된다. 재개발의 기제는 모기향과 닮았다. 재개발의 논리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게임에서 “깍두기”가 되어 소외된다. 재개발의 논리는 여전히 모두(혹은 그 누구도)를 호명하지 못하는 엉성한 틀에 불과해 보인다. 작가는 재개발 지배 질서는 이와 같은 엉성한 틈들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 환상을 판다고 보았다. 잡히지 않는 연기처럼 “높은 감정평가” 혹은 “프리미엄” 등 사람들이 그것을 쥐기만 하면 행복이 다가올 것 같은 환상을 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기는 이내 곧 사라지고, 남는 것은 재와 향을 흡입한 모기이다. 우선 재가 되어버린 모기향은 완결한 구조를 지닌 듯 보였던 이 지배 질서의 허술함 및 허망함을 읽을 수 있다. 앞선 엉성한 틀의 날것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해독한 향을 흡입한 모기는 봉천동 지역 내의 떠나야 하는 철거민 넘어 재개발 조합장 또는 환상을 흡입하고 마음이 허해지는 모든 사람일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어떤 환상을 흡입하고, 어떤 모기를 죽이고 있을까?

전시를 진행하고 마무리하며..

신림동 골목에 있는 크지 않은 장소에서 전시를 진행했음에도, 정말 많은 분이 저희 전시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방문해주셨습니다. 봉천동, 신림동의 주민분들은 물론 해당 주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학생분들부터 직장인분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저희 전시를 보고 가주셨습니다. 저희 전시의 주제는 한 개인의 몫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전체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더욱 많은 분들의 참여를 통해 풍성하게 전시를 진행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매우 감사드리며, 더욱 다양한 불빛들이 빛날 수 있는 봉천동, 그리고 우리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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