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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날

201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광화문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9번째 촛불을 밝히고 돌아왔던 그 날, 저에게는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서둘러 TV 앞에 앉아야 할 이유가 있었는데요. 그날 밤 SBS에서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시민 주도의 평화적 촛불집회의 태동이 된 계기로 2002년 6월에 일어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다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의정부여고 학생 중 한사람으로서 십수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과 인터뷰를 했었지요. 처음에는 TV 속 제 모습이 마냥 신기했고, 그 후로 며칠간 공중파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졸업 이후 연락이 닿지 않았던 고교 동창들로부터 무수한 메시지를 받았거든요. 한 친구가 제 인터뷰 장면이 담긴 인증샷을 보내며 그런 말을 하더군요. “나 그 때 네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 그깟 공놀이가 중요하냐고, 의정부역 앞에서 촛불 들자고 했었던 거.”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나 ⓒ 개인소장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나 ⓒ 개인소장

# 열다섯 소녀들의 어이없는 죽음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던 2002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신효순양과 심미선양은 미군 장갑차에 의해 꽃다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포르투갈과의 예선전을 하루 앞둔, 6월 13일 지방선거날 오전에 벌어진 사고였습니다. 효순은 까만 티셔츠에 청바지, 미선은 빨간 월드컵 응원티셔츠에 흰색 바지를 입고 고개 너머에 사는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길이었다고 해요. 당시 미군은 사고 발생 후 유족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채 서둘러 현장조사를 벌였고 “사고 차량 차장이 30m 앞에서 여중생을 발견하고 무선으로 두 차례 운전병에게 정지 명령을 내렸지만 통신 장애로 듣지 못했다”는 발표도 조사 결과 허위로 밝혀졌습니다. 사고 당일, 대부분의 언론이 이 사건을 단신으로 간략하게 보도했습니다. 지방선거와 월드컵 이슈에 묻혀 버렸죠. 저와 제 친구들 역시 언론 보도가 아닌 학생들 사이의 소문으로 먼저 소식을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고를 당한 미선이의 언니가 같은 학교 3학년 선배였기 때문에 다른 학교보다 소식이 빨랐어요. 처음 소식을 듣고 왜 언론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지, 왜 정부가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정부에는 수사권이 없고, 그것이 불평등한 SOFA 협정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수업 시간에 국사 선생님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2002년 미선효순 추모 및 미군 규탄 ⓒ 개인소장

2002년 미선효순 추모 및 미군 규탄 ⓒ 개인소장

# 미 2사단에 달걀을 던지다

그 주 토요일에 사고 책임이 있는 미2사단 앞에서 집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고, 수업을 마치자마자 몇 명의 친구들과 교복을 입은 채로 달려갔습니다. 아마 사건이 발생하고 가장 먼저 일어난 시위였을 것입니다.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그 곳에 가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사고 희생자와 직접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가야겠다는, 한 명이라도 더 가서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미 2사단 앞에는 의정부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제 또래의 교복 입은 학생들이 꽤 많이 모여있었습니다. 급하게 추진된 집회였기에 제대로 된 피켓 하나 없었고 몰려선 사람들 앞에 수십명의 의경들이 방패를 든 채 정렬해 있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라', ‘미군은 사과해라' 같은 구호를 외쳤고 방패를 든 의경 너머 부대 울타리 안에서 우리를 구경하는 미군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화가 난 누군가가 달걀 한 판을 가져와서 부대에 던지자고 했고, 앞줄에 있던 학생들이 제일 먼저 달걀을 힘껏 던졌습니다. 던져진 달걀은 부대 근처도 못가고 방패에 부딪혀 깨져버렸고 그것이 꼭 우리 처지같기도 하고 무력해지는 기분에 조금 서글펐습니다.

2002년 미선효순 추모 및 미군 규탄 ⓒ 개인소장

2002년 미선효순 추모 및 미군 규탄 ⓒ 개인소장

# 늬들이 민주주의를 알아?

미 2사단 앞에서의 첫번째 집회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의정부역 광장에서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 기간은 예선을 통과한 우리 월드컵 대표팀이 승승장구하며 경기를 이어가는 날들이기도 했습니다. 의정부역 집회에 두차례 정도 참여했을 때, 교장 선생님이 각 교실을 직접 돌면서 집회에 참여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교내 방송도 수차례 하셨지요. 저희반 교실에도 오셔서 집회 참여가 얼마나 나쁜짓인지 아느냐, 벌써부터 그런 데를 다니면 안 된다고도 하셨습니다. 빨갱이 어른들이 학생들을 이용하는 것이고, 미군이 정말 우리나라에서 물러가면 큰일난다는 이야기 끝에 회심의 한 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임마, 늬들이 뭘 아니, 늬들이 민주주의를 알아?” 교장 선생님의 그 말이 오히려 제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제대로 알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때부터 신문도, 관련 뉴스도 더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납니다. 6월에는 의정부 지역 학생들과 일부 시민단체만이 집회에 참여했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사고 관련 병사들이 최종 무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지면서 집회는 전국적으로 확대 되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사과와 일부 불평등한 SOFA 협정이 개정되는데에는 이러한 촛불의 힘이 크게 작용을 했습니다. ‘산과 들을 말리고 나무와 곡식을 태우면서 또 유월이 왔구나. 효순이 미선이 너 귀여운 우리의 딸들을 우리가 이 땅에 되살려야 할 유월이 왔구나. 이제 거꾸로 너희가 별이 되어 우리 갈 길을 가리켜주는 유월이 왔구나. 우리의 꿈을 지켜주고 쓰러지려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다시 그날이 왔구나.’ -2015년 6월, 신효순 심미선 양의 13주기 추모식에서 신경림 시인이 낭송한 시-

2002년 미선효순 추모 및 미군 규탄 ⓒ 개인소장

2002년 미선효순 추모 및 미군 규탄 ⓒ 개인소장

# 세상을 바꾸는 촛불의 힘!

신효순, 심미선 양의 17주기가 곧 돌아옵니다.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건립하게 될 평화공원도 이 때 착공식을 갖는다고 합니다. 2002년을 시작으로 2004년, 2008년, 그리고 2016년. 현대사의 굵직한 고비들마다 시민들의 촛불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저에게 광장과 촛불집회는 불평등에 저항하고 희망을 말하고 모든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해방의 공간이었고 그 때의 기억이 이후 제 삶의 모든 선택에도 참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쩌면 미 2사단 앞에서 계란을 던지고, 있는 힘껏 구호를 외쳤던 그 날이 제 인생을 바꾼 결정적 하루 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경험컨대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를 다독이며 우리들 스스로 돌봄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경험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습니다. 세상을 망치는 건 무책임한 어른들이고 그럼에도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건 언제나 청소년들이라는 생각도 교복을 입고 촛불을 들었던 그 때와 변함이 없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늬들이 민주주의를 아느냐'고 했던 교장 선생님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지난 2016년 연말, 참여연대로부터 상장을 하나 받았습니다. 상의 제목은 ‘촛불개근상'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시민들이 힘을 모을 때, 참여연대가 얼마나 큰 노력을 함께 했는지 느꼈기에 더욱 뜻깊은 상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시민들 곁에서 큰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참여연대를 응원합니다.

촛불 개근상 ⓒ 개인소장

촛불 개근상 ⓒ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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