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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넷 vs 예순 넷

#Scene 1. 나는 서른 넷이었다. 빨리 뛸 수 있도록 낮은 신발을 신었다. 백골단, 체포조가 투입되기 전에 빨리 뛰어야만 했다. #Scene 2. 나는 예순 넷이다. 찬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옷, 행진하기 편한 신발을 신었다. 핸드폰과 스티로폼 깔개는 필수다.

2017.2.25. 참여연대 정기총회 행진 ⓒ 박영록

2017.2.25. 참여연대 정기총회 행진 ⓒ 박영록

#Scene 3. 나는 서른 넷이었다. 경찰이 들이닥쳤다. '안경 쓴 저년 잡아라!'를 뒤로 죽을 만큼 뛰었다. 낯선 건물 화장실에서 숨 죽이며 경찰이 철수하기를 기다렸다. 머리를 다듬고 핸드백을 고쳐매며 건물을 나섰다. '오늘도 무사히’ #Scene 4. 나는 예순 넷이다. 경찰이 집회 참가자의 통행을 위해 여기저기서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 경찰의 수신호에 길을 건너며 만나기로 한 사람들을 찾아 뛰지 않고 두리번 거릴 수 있다.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를 따라 웅얼거리는 아기 같은 얼굴의 의경옆을 스쳐 지나갔다. 여전히 안경을 쓰고 있는 나는 경찰을 피해 건물 화장실에 숨지 않았다.

언젠가의 명동성당. 그 입구는 어디였을까?

언젠가의 명동성당. 그 입구는 어디였을까?

명동성당 그리고 광화문

#Scene 5. 나는 서른 넷이었다. 명동성당 농성장으로 통하는 비밀통로앞이다. 지금 성당안으로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모른다. 먼저 들어간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함께 싸워야 했다. 입이 탔다. 다리가 움직여 지지 않았다. 안내해주신 수녀님의 손을 한 번 꼭 잡고 발길을 돌렸다. 밤이면 백일이 된 막내를 돌볼 사람이 없다. 울음이 났다. 최루탄으로 범벅이 된 온 몸을 박박씻고, 막내에게 젖을 물렸다. #Scene 6. 나는 예순 넷이다. 기상천외한 깃발과 피켓,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들이, 연인들이 그리고 친구들이 광장에 가득하다. 이동하기 어려울 만큼 행렬이 많을 때면 안전사고가 날까봐 가슴조인다. 비장함, 풍자,해학이 만나 평화와 즐거움으로 넘친다. 촛불파도 속에 모두는 하나다. 흥겨운 음악도 흐르고 바람결에 맛있는 냄새까지 스친다. 촛불을 들고 끝없이 구호를 외쳤다.

시민악대 사진

시민악대 사진

#Scene 7. 나는 서른 넷이었다. 이한열의 운구행렬이 광주로 떠나고 시청광장에 연좌했던 시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가자! 청와대로! '를 외쳤다. 대열은 광화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날은 이순신동상앞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 검은색 장갑차에서 64다연발 최루탄이 발사됐다. 공포였다. 아수라장이었다. 입과 코를 막고 도망갈 길을 찾는다. 최루탄이 걷히고, 텅빈 조선일보사 앞 길위에 벗겨진 구두짝과 주인 잃은 핸드백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청와대를 향했던 행렬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Scene 8. 나는 예순 넷이다. 집회도, 청와대 앞 100m 행진도 끝났는데 사람들이 광장에 남아있다. 무언가 더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는 사람들,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다. 광장 근처 술집에는 연신 잔을 부딪히는 사람들도 있다. 경찰이 호루라기로 차량을 통제하고 사람들은 길을 건넌다. 앳된 얼굴의 경찰에게 수고의 인사를 건넸다.

2017년 촛불집회

2017년 촛불집회

1987 vs. 2017 나의 6월은 명동성당과 막내이다. 한숨과 눈물, 피와 죽음으로 가득했던 1987년의 그 때, 나를 명동성당 앞에서 돌아서게 했던 막내는 서른살이다. 막내와 민주주의가 함께 자란 것은 아니겠지만 막내를 보면 떠올리게 되는 기억, 나의 6월을 기념하고자 이 글을 쓴다. 참여연대 공동대표 정강자 * 87년에는 카메라가 정말 귀했다. 그리고 도망다니기 바빴기 때문에 사진 찍힐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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