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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기부 모금함 상세

세상에 하나뿐인 달력 2020

KIN(지구촌동포연대)
목표 금액9,800,000원 목표
모금함 상태모금종료
9,813명이 참여했습니다
  • 직접기부 (436명)4,099,500
  • 참여기부 (9,377명)935,500
  • 공유, 응원, 댓글로 참여하면 카카오가 기부합니다.
  • 기부금은 100% 단체에 전달됩니다.
KIN(지구촌동포연대)

프로젝트팀

'KIN(지구촌동포연대)'은 재외동포의 역사와 경험을 존중하며, 재외동포의 인권현실을 알리고, 나아가 재외동포와 남과 북의 상호교류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역사와 인권의 관점으로 일관되고 평등하게 재외동포와 함께 하는 그 꿈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구체적인 실천 활동을 중심으로 재외동포사회 공동체와 굳건히 연대하여 함께 풀어나갈 집단이 되고자 합니다.

같이 기부해요

모금함 스토리 본문

강제동원의 아물지 않은 역사, 사할린 한인

연해주 옆 홋카이도 위에 한반도 길이만큼 길게 뻣어 있는 섬, 사할린. 이곳에는 약 2만5천여명의 동포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 멀고 추운 곳으로 가게 되었을까요? 사할린 한인의 이주경로는 다양하며 이는 국제정세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19세기 말 초기 사할린 이주는 연해주를 거쳐 북사할린으로 들어갔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어업으로 생계를 꾸렸지요. 그후 1905년 러일전쟁의 결과로 사할린은 북위 50도를 기준으로 남쪽은 일본이 차지하게 됩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사할린에서 당시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들의 운명도 갈립니다. 소련영토인 북사할린에 있던 조선인들 약 천여명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의 개발과 식민지정책으로 남사할린에 이주하게 된 조선인들은 1945년 소련의 점령으로 소련에 편입됩니다. 즉 과거 연해주 지방 등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고려인"들과는 다르게 소련사회로 편입되었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할린 동포라 부르는 사람들은 "고려인" 보다는 "사할린 한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일본은 새롭게 얻은 사할린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또한 사할린섬의 풍부한 천연자원(석탄, 목재, 수산물 등)을 이용하기 위해서도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초기 중국인의 계절노동을 활용하기도 하였으나, 노동력 유지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식민지 조선인들을 활용하였습니다. 식민지 조선인들의 정착을 유도하여 지속적인 노동력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즉, 전쟁시기 강제동원이 아니더라도 사할린으로의 이주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을 쥐어짜기 시작합니다. 모집, 관알선, 징용의 형태로 수많은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하였습니다. 1938년 이후 4년만에 사할린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의 인구가 거의 두배로 증가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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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위치(연해주 옆 혹카이도 위)

사할린 위치(연해주 옆 혹카이도 위)

2014년 세상에 하나뿐인 달력 첫 전달(홈스크)

2014년 세상에 하나뿐인 달력 첫 전달(홈스크)

고이쾌임,신혜분,최군자, 김록녀 (프라브다마을 2015

고이쾌임,신혜분,최군자, 김록녀 (프라브다마을 2015

사할린주 한인협회 사무실 2016

사할린주 한인협회 사무실 2016

코르사코프의 한인들 2017

코르사코프의 한인들 2017

고영순 마카로프 한인회장2018

고영순 마카로프 한인회장2018

우글레고르스크2019

우글레고르스크2019

사할린 카레이츠

1945년 8월 9일, 유럽에서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소련은 태평양전쟁에도 참전합니다.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발표했지만, 남사할린 지역은 15일 이후에도 전투가 이어졌습니다. 사할린의 경우 북사할린에서 육군의 남하와 홈스크항으로 상륙작전을 통하여 남사할린을 8월 26일 최종 점령합니다. 사할린에서는 8월 15일 이후에도 수많은 피난 행렬이 이어졌고, 특히 긴급 탈출을 위해 사용하려했던 홈스크항을 소련군이 점령하자 일대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퇴로가 막혀버린 일본인들은 패전에 가까워오자 조선인들을 무차별 살해하였습니다. "소련 스파이 짓을 했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지금까지 소련군정에 의해 밝혀진 학살 사건은 2건입니다. 미즈호 촌에서 벌어진 27인학살사건과 카미시스카에서 벌어진 18인 학살입니다. 미즈호촌의 학살은 퇴역 군인이 조직한 일본인 자경단에 의해 어린아이와 여성까지 무참히 학살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카미시스카에서는 일본 헌병과 경찰들이 피난 행렬 속에 조선인들을 유치장에 구금하고 총살후 불을 지르고 달아난 사건입니다. 소련이 남사할린을 점령하고 전쟁은 끝이 났지만, 고국으로 돌아갈 길은 막혀 버립니다. 일본인들은 두차례에 걸쳐 유골까지 가져가면서 조선인들은 그 광경을 마냥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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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 최(채)정환

남편 : 최(채)정환

고국의 손길을 선물해주세요

그렇게 살게 된 사할린 섬. 밀물과 썰물의 때를 맞춰 미역도 줍고 조개도 캐서 먹었습니다. 절기에 맞춰 배추심고 무심어서 김장을 했습니다. 민족의 풍습과 전통은 고국에 대한 향수와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었습니다. 설이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으며 세배를 다녔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음력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처럼 나이 많은 분들은 제사, 생일 등을 음력으로 지냈고, 바닷가 물때를 알려면 음력이 필수였습니다. 손없는 날도 여전히 지키며 사시는 동포도 계셨습니다. 2014년부터 러시아 달력에 음력, 절기와 한국명절 등을 표기한 "세상에 하나뿐인 달력"은 음력이 필요한 사할린 동포에게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달력에 걸린 한국의 풍경사진들은 동포들에게 위안이 되었고, 시민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다 것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래 가져오는 거요? 너무나 고맙지만, 나는 대접할게 없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가슴속에 미안합니다. (모금에 동참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북위 50도 인근 보쉬니아코보에 살고계시는 조영제 어르신이 하신 말씀입니다. 한국에서는 흔한 달력이지만, 러시아 사할린에서는 "귀하신" 음력달력. 소중한 참여로 사할린 동포들에게 따뜻한 새해선물을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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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단을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조영제 할아버지

방문단을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조영제 할아버지

조영제 어르신 내외가 직접 차려주신 점심상!

조영제 어르신 내외가 직접 차려주신 점심상!

자식들을 위해 러시아어로 정리한 족보

자식들을 위해 러시아어로 정리한 족보

올해 달력사진을 설명하는 김지연 사진가

올해 달력사진을 설명하는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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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함 상세정보

  • 프로젝트팀
    KIN(지구촌동포연대)
  • 모금기간2019. 08. 14 ~ 2019. 10. 14
  • 사업기간2019. 10. 29 ~ 2020. 01. 30
  • 영수증 발급기관아름다운재단

본 모금은 아름다운재단에서 사업 검토 및 기부금 집행, 사후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달력 디자인, 인쇄(1500부)4,073,953
  • 현지 방문비용(2인 항공권)961,047
목표 금액5,035,000

현지 방문비용 중 숙박비를 현금지출하게 되어 증빙서류 등 사업비 정산업무 간소화를 위해 지출내역 변경 달력 디자인 인쇄 : 3,035,000원 -> 4,073,953원 변경(▲ 1,038,953원) 현지 방문 : 2,000,000원 -> 961,047원 변경 (▼ 1,038,95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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